Artist Statement

 어린 시절 나는 환상동화와 신화를 좋아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나는 일반적인 인간의 생김새와 다른 이형의 존재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들에게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고, 현실에서 내 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울 때면 스케치북을 펴고 환상의 세계로 도망치곤 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판타지에 의지해왔다.¹ 고대인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해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신화적 세계관에 기대었고, 많은 어린이들은 환상동화 속 주인공들과 함께 유년을 보냈다. 신화는 우주만물의 원리와 질서를 담을 뿐 아니라 집단과 계층, 젠더, 의례와 종교적 의무 같은 삶의 다양한 영역을 은유하고, 환상동화에는 사회의 부조리나 차별적 구조, 개인의 콤플렉스 등이 반영되었다.

 나 역시 세계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비현실적 세계를 그린다. 단지 실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닌, 현실을 받아들이고 연결되며, 언젠가 현실을 바꿀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림 안에서 나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통해 현실의 문제들을 드러내거나, 기존의 구조와 관습을 전복하고, 때로는 새로운 규칙을 부여해 나의 소망이 섞인 틈새의 유토피아²를 건설한다.

 그곳은 인간의 형상을 벗어난 존재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지느러미 같은 귀에 짐승의 다리와 머리, 악마의 꼬리, 천사의 날개를 가진 혼종의 괴물들이다. 이 괴물들은 나 자신의 콤플렉스가 투영된 존재들이자, 사회가 정한 정상성 범주 밖의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불안과 결핍을 지녔지만 동시에 그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환상동화에 나타나는 통념적 여성성이나 수동적 속성에서 벗어나 양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주장한다. 옛 신화 속에서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영웅의 희생양이 되던 타자가 아니라,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이자 영웅으로서 세계관 안에 새롭게 자리한다.

 세상은 점점 더 디지털화 되며, 인간의 역할과 수공예적 가치가 희미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여전히 나의 신체를 움직여 그려내는 회화의 힘을 믿는다. 또한 가장 나다운 것을 하기위해 ‘그리기’라는 원초적인 행위로 돌아간다. 신화나 환상이 어딘가 고리타분하고 낡은 것으로 여겨질 때 판타지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될 때 기억의 소중함을 떠올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와 그들이 지닌 이야기는 작업의 중요한 씨앗이 된다. 내 작업은 유년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나만의 환상적 세계이자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나와 세상에 대한 기록이다. 나만의 도피처였던 그 세계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길 바란다.




¹  브라이언 애터버리,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27p 참조
²  비판적 유토피아critical utopia라고도 부르는 새로운 유토피아의 장르. 상상 속의 사회에도 다름과 불완전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유토피아를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 중인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시각. 최악의 사회에서도 순간의 행복과 틈새의 조화를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유토피아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브라이언 애터버리,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424, 426p 참조












© Seohyun Kang